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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전씨, 충근정량 호성공신 석릉군 시제를 다녀와서4
전과웅    
2012-11-12
조회
3764


정선전씨, 충근정량 호성공신 석릉군 시제를 다녀와서
(旌善全氏, 忠勤貞亮 扈聖功臣 石陵君 時祭)

2012년 11월 04일 일요일
오늘은 광명시 노온사동 산 37-3번지에 있는 석릉군 묘소에 시향 지내러 가는
날이다. 나는 임하군파의 파시조가 계신 곳에 간다고 생각하니 왠지 모르게 설
렜다.
시계는 오전 05시를 가리키고 있었는데, 따뜻한 보금자리에서 일어나기가 싫
다. 그렇지만 스마트폰을 집어 들고 눈을 부비면서 어제 관심지역으로 추가한
광명시의 날씨를 찾아서 살펴보았다.
오전6시 7시 비, 오전10시 비, 12시 비, 오후 3시부터는 쭉 비가 오는 것으로
표시되어 있었습니다.
비가 전국적으로 온다는 일기예보가 있었기에 옷차림을 어떻게 할 것이며, 우산
을 가져갈 것인가 말 것인지 망설여졌다.
바쁘게 준비하고 우산을 가지고 집을 나서는데 필구공 종중 전찬윤 총무한테 메
시지도 왔었다.
이번 기회에 창홀에 의한 진행과정을 더 세밀히 관찰하여 더 많이 배워야겠다.

아직도 어두운 6시에 강릉시 택시부광장에 모였다.
작년에는 버스 2대로 갔었는데 올해는 우리 필구공 종중과 임하군파 광순공 문
중이 합동으로 가기로 한 첫 해입니다.
우리종중 20명, 광순공 문중18명 그리고 전씨종친회 강릉회장인 전창윤님과 부
회장 1명이 동승하였습니다. 채미헌파이지만 강릉종친회 회장을 맡고 있는 전창
윤님께서 같이 시향에 가는 것은 뜻 깊은 일입니다.
버스에 타서 우리 유덕댁 장손 전윤재님과 함께 타서 우리 소문중의 문사에 대
하여 대화를 하였는데, 장손께서는 벌초를 할 때 제초기가 고장이 나서 2일에
걸쳐서 한 예를 들어가면서 문사 진행에 얽힌 여러 가지 말씀을 하였다. 그래
서 장손은 의무만 많지만 권리는 적다고 대답하였다. 여러모로 장손이 소문중
을 위하여 노고가 많아서 감사하다는 뜻을 전했습니다.

7시경 원주 미가일식당에서 아침식사를 하였다. 우리가 평소 먹는 한식으로 된
장국이 특히 맛있었다.
9시경 차창 밖 풍경이 달라지고 있었다. 빌딩숲이 보이며 도시임을 알 수 있었
는데, 자세히 이정표를 보니 의왕시임을 알 수 있었다. 조금 더 지나다보니 어
느덧 광명시에 있는 선산입구에 도착하였다.
작년에 왔을 땐 내비게이션이 작동이 안 되어서 임하군파 총무에게 전화로 물어
보며 길을 헤매던 기억이 났었는데, 오늘은 내비게이션이 작동이 잘 되었는지
아니면 운전기사님이 지리를 잘 아는지 순조롭게 도착할 수 있었다.

10시경 광명시 노온사동 묘소에 도착하니 “정선전씨 임하군파 추계 시향” 플
랑카드와 회장단 몇 분이 반갑게 맞이하였다. 전국에서 모이는 행사에 강릉에
서 제일 먼저 도착 하였다.
묘소의 첫 인상은 양지쪽에 남향으로 넓게 자리 잡았고 푸근하고 아늑함이 느껴
졌다.

묘소 상단에서 주위를 살펴보고 있는데, 전영래 임하군파 부회장님이 제가 강릉
에서 왔는지 확인 전화가 왔다. 아래쪽을 바라보니 전화를 거는 모습이 눈에 띄
어, 한 걸음에 달려가서 인사를 드렸다.
전 번에 전화로 종중발전을 위해 건설적인 의견을 교환한 인연이 있었다.
조금 있으니 대구에서 "정선전씨 석릉군파 임하군파 카페"를 운영하는 전정구님
이 대구에서 올라오셨다.
작년에 이어 두 번째로 만났다. 부회장님과 전정구님와 함께 사진도 찍고 종중
발전 방안에 대하여 논의하였다.
전영래 부회장님께서는 우리 말(한글)로 시향을 진행하는 것에 관심이 많으셨습
니다. 앞으로 대다수가 한글세대이고 컴퓨터가 익숙한 디지털세대로 변화가 되
므로 한문으로 구성된 홀기도 한글로 창홀해야 할 시기가 올 것으로 생각하였습
니다.
전정구님에게는 ‘오늘 사진 및 기록을 담당하여 오늘의 역사를 인터넷에 올려
서 이곳에 오지 않은 분들이 현장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라고 부
탁의 말씀을 드렸다.
한 시간이나 먼저 왔으므로 시간의 여유가 있었는데, 우리 강릉종중 전세표 원
로께서 저를 부르셨다.
제가 예전에 출판한 “정선전씨 양양댁 역사 이야기”책을 정독하셨고 오자를
발견하였다고 하였다. 제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부분을 지적해 주셨다. 관심을
가지고 정독하셔서 부족한 부분을 지적하여 너무 감사했습니다.
요지는 39세 선조 존함이 ‘瑊’이 정상이나 ‘咸’으로 표기하였다는 것이었습
니다.
瑊은 컴퓨터에서 찾을 수 없는 글자이기 때문에 오타가 난 것 같다는 말씀도 덧
붙여 주셨습니다.

11시가 되어서 수도권, 강릉, 대구 등 경향각지에서 130여명이 모였다.
작년에는 비가 와서 문제가 많았는데 올해는 비가 온다는 예보는 있었지만 다행
히 행사하는 시간에는 오지 않았다.

제일 먼저 산신제를 지내면서 시향의 첫 장의 막을 올렸습니다.
제일상단에 있는 임하군 단소에서 시제가 봉행되었습니다.
아래와 같은 홀기에 의해서 엄숙히 진행하였습니다.
笏 記
陳設
제수를 진설하시오.
獻官以下皆序立
각 헌관과 제 집사는 제단 앞에 차례로 서시오.
諸執事者 謁者 詣墓前 鞠躬再拜興平身 復位
모든 집사자와 알자는 묘지 앞으로 나아가 몸을 굽혀 재배하고 일어나서 자기
임무 위치로 복귀하시오.
贊引引 初獻官 詣盥洗位
초헌관을 모시고 관세할 수 있는 위치로 나아가시오.
盥洗 帨手
관세 물에 손을 씻고 닦으시오.
詣墓前 初獻官 點視陳設 跪 三上香 酹酒灌于墓前
초헌관은 묘전에 나아가 진설이 법에 맞는지 점검하고 향로 앞에 무릎을 꿇어앉
아 향을 세 번 넣어 피우고 묘전에 술을 부으시오.
初獻官 鞠躬再拜 興平身 復位
초헌관은 재배하고 일어나서 자기 자리로 복귀하시오.
獻官以下參神 鞠躬再拜 興平身
헌관이하 모두 집례의 소리에 맞춰 재배 하시오.
(배~~·흥·) (배~~·흥·)
初獻官 詣墓前 跪 獻酌
초헌관은 제단 앞에 나와 무릎을 굻으시오.
각 술잔에 술을 가득 담아 각 신위 전에 올리시오.
獻官以下俱跪
각 헌관이하 모두 꿇어 엎드리시오
祝取祝板 跪 獻官之左 讀祝
축문판에서 축문을 꺼내서 축관은 초헌관 좌측에 꿇어 축을 읽으시오.
鞠躬再拜 興平身 復位
초헌관만 재배하시고 제 자리로 가시오.
贊引引 亞獻官 詣盥洗位
아헌관을 모시고 관세할 수 있는 위치로 나아가시오.
盥洗 帨手
관세 물에 손을 씻고 닦으시오.
詣墓前 跪 獻酌
제단 앞에 나와 무릎을 굻고 앉으시오.
각 술잔에 술을 가득 담아 각 신위 전에 올리시오.
鞠躬再拜 興平身 復位
아헌관은 재배하고 일어나서 자기 자리로 복귀하시오.
贊引引 終獻官 詣盥洗位
종헌관을 모시고 관세할 수 있는 위치로 나아가시오.
盥洗 帨手
관세 물에 손을 씻고 닦으시오.
詣墓前 跪 獻酌
제단 앞에 나와 무릎을 굻고 앉으시오.
각 술잔에 술을 가득 담아 각 신위 전에 올리시오.
鞠躬再拜 興平身 復位
종헌관은 재배하고 일어나서 자기 자리로 복귀하시오.
初獻官 詣墓前 跪
초헌관은 제단 앞에 꿇어앉으시오.
添酌
첨작하고
鞠躬再拜 興平身 復位
재배하고 일어나서 자기 자리로 복귀하시오.
獻官以下 退休食頃 平身 復位
헌관이하 식사하는 잠시 동안 물러나 기다리고 그 후 제자리로 오시오.
獻官以下肅竢
모두 엄숙히 기다리시오.
祝三稀吟 獻官之右 告利成 復位
축관은 헛기침을 세 번하고 헌관의 오른 쪽으로 이동하고 “이성”을 고하시
오. 제 위치로 복귀하시오.
獻官以下 鞠躬再拜 興平身
헌관은 재배하고 일어나시오.
諸執事者 謁者 詣墓前 鞠躬再拜 興平身 復位
모든 집사자와 알자는 묘전에 나아가 재배하고 일어나시오. 제 위치로
가시오.
初獻官 詣墓前 飮福禮
초헌관은 묘전 앞에 나아가 음복하시오.
祝進掇茶器
축관은 나아가서 다기를 치우시오.
祝焚祝
축관은 축문을 태우시오.
掇饌
제물을 치우시오.
祭畢-
모든 예를 마치겠습니다.

홀기 중에 있는 “祝三稀吟 獻官之右 告利成 復位”가 궁금하여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았습니다.
옛날에 번역할 때 吟의 의미를 잘 몰라서 향교에 다니는 분에게 문의하였습니
다.
【吟 읊을 음, 입 다물 금
1. 읊다
2. 신음하다(呻吟--)
3. 탄식하다(歎息ㆍ嘆息--)
4. (새가)울다, 노래하다
5. 끙끙 앓다
6. 취주하다(吹奏--: 관악기를 불어 연주하다)
7. 말 더듬다
8. 시가(時歌), 읊는 시가(時歌)
9. 주걱턱
a. 입을 다물다(=噤) (금)

형성문자
噤(금), 欽(음)과 통자(通字). 대법원 인명용으로는 음. 뜻을 나타내는 입구(口
☞입, 먹다, 말하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今(금)으로 이루어짐. 목소리를
입 속에 머금고 낮은 소리로 읊조리다의 뜻】
그 분의 의견은 ‘입 다물 금’로 번역하는 것이 더 나은 것으로 조언을 하였습
니다.
그래서 축(관)은 입을 다물고 조용히 초헌관 오른쪽으로 간다고 해석한 적이 있
었다.
그러나 집례가 「축삼희음 헌관지우 고이성 복위」하면 축(관)이 초헌관 앞으
로 걸어가서 고개를 숙이며 ‘이성’을 고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오늘을 기회로 吟은 ‘입 다물 금’이 아니라 ‘읊을 음’으로 하는 것이 더
옳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吟은 목소리를 입 속에 머금고 낮은 소리로 읊조리
다 뜻이므로 祝三稀吟을 “축관의 세 번의 헛기침”으로 번역하는 것이 합리적
이라 생각하였습니다.

장소를 중단으로 옮겨서 제2장의 막을 올렸습니다.
정선전씨 42세 충근정량 호성공신 諱룡(전룡) 선조님 묘소에서 홀기에 의해서
여법하게 진행하였습니다.
公의 약력을 살펴보면

【1593년(선조 26)
수문장이 제수(除授)되었다. 임진왜란 때 종묘의 위패를 무사히 옮긴 공으로
사복시주부(司僕寺主簿, 종6품)가 제수(除授)되었다.
1601년(선조 34)
공이 인정되어 특별히 사복시판관(司僕寺判官, 종5품)이 제수(除授)되었다.
1605년(선조 38)에는
다시 내사복시내승(內司僕寺內乘)에 제수(除授)되었다.
이후 석릉군(石陵君)에 봉해졌으며, 상으로 노비7명, 토지60결, 말1필, 은자
등을 하사 받으셨다.
사후 자헌대부(資憲大夫) 형조판서(刑曹判書)에 증직되었다.
1624년(인조 2)에는
정사공신(靖社功臣) 88인의 《회맹록(會盟錄)》에 올랐다.
▷내사복시:
사복시(司僕寺)의 부속관아(附屬官衙)로서 궁내의 말에 관한 일과 임금의 탈 것
에 관한 일을 관장하였다. 병조(兵曹)의 경관직(京官職) 중 산직(散職: 일정한
직무가 없는 벼슬)의 하나로, 대궐 안에 따로 설치한 사복시(司僕寺)이다. 내사
복시(內司僕寺)에 대하여 사복시를 외사복(外司僕)이라고 칭하였다.
내사복시 관원으로 내승(內乘)이 3원인데, 1인은 사복시(司僕寺)의 정(正: 正三
品)이 예겸하고, 2인은 종이품에서 구품까지 관원이 겸직하였다.】

시향 봉행중 독축의 순서가 되어 집중하여 들어보았습니다.
한문으로 되어 있어 완전히 알아듣기 어려웠는데, 축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습
니다.
墓 祭 祝
維 歲次 壬辰 九月己酉 朔 二十一日己巳
13世孫
敢昭告于
顯12代祖考 忠勤貞亮扈聖功臣 資憲大夫 刑曹判書 石陵君 府君
顯12代祖妣 貞敬夫人 密陽朴氏
顯12代祖妣 貞敬夫人 南陽洪氏
顯12代祖妣 貞敬夫人 海州崔氏
之墓
烈烈我祖 維嶽降神 歲在壬辰 忠義貫日 智勇超倫 禍亂如熇 八年扈駕 草行露宿 藥
鍼扶輿 凌統翼主 王庸嘉乃 能奮威武 功存社稷 名登鼎彛 積行垂德 以遺子孫 先
蔭是賴 克熾而昌 譬若醴泉 源遠長流 體魄妥寧 堂斧蘬然 歲薦一祭 有踐豆籩 履玆
霜露 不勝悽悵 謹以淸酌 庶羞祗奉 尙

중단에서 경건하게 시향을 드리면서, 석릉군의 호국 정신과 숨결이 그대로 느껴
지는 것 같았다. '나는 앞으로 우리나라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또 어떻게
나라 사랑을 실천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았다.

축문을 들으면서 문득 석릉군 할아버님이 임진왜란 때 공신이라는 사실이 생각
났었습니다.
1592년에 생존해 계셨다는 것을 생각해 보니 지금까지 약 420여년의 역사를 추
정할 수 있다는 사실에서 어느 책에서 읽은 다음과 같은 구절이 생각났었습니
다.
“그 지역에 뿌리내리고 사는 집안이라는 정의는 적어도 500년 정도의 역사를
추정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집안의 역사를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42세 충근정량 호성공신 석릉군 할아버님이 임진왜란 때 공신이시니 1592년이
라고 계산할 수 있습니다. 묘소는 경기도 광명시에 있습니다.
43세 선조의 묘소는 경기도 광명시에 있습니다.
44세, 45세, 46세, 47세, 48세, 49세 선조의 묘소는 강릉시 교동, 입암동, 강동
면, 사천면 등에 흩어져 있었으나, 강릉시 왕산면 웅좌(곰자리)로 모셨습니다.
50세, 51세 선조의 묘소는 강릉시 성산면 금산리 술좌(개자리)에 있습니다.
52세, 53세 선조의 묘소는 강릉시 지변동에 있습니다.
이런 추정을 통해서 강릉지역에 뿌리내리고 사는 집안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
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천막을 하단으로 옮겨 제3막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43세 大字 翼字(전대익) 선조 묘소에서 시향을 올리는 순서가 되었습니다.
公은 임진왜란 때 혁혁한 공을 세운 선친 덕분에 과거시험을 보지 아니하고 공
직에 나서는 음관의 혜택을 받으시어, 평안도 벽탄군수와 경상도 청송부사를 역
임하셨다.
상단, 중단, 하단으로 이동할 때마다 초헌관, 아헌관, 종헌관이 사람이 바뀌었
습니다.
그러나 행사진행도우미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제일 처음 묘소에 재배하는 사람이 초헌관이 아닌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주로
행사진행을 돕는 도우미가 제일 먼저 재배하고, 또 제일 마지막에 재배하는 것
이었습니다.
이런 사실은 마치 산신제를 먼저 지내고 묘소에 지내는 것과도 같다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렇게 진행되는 취지는 행사진행을 돕기 때문에 재배할 기회가 없으므로 먼저
의례를 올리는 것으로 이해하였습니다.
행사진행도우미를 세분하여 알자, 찬인, 봉향(우집사), 봉로(좌집사), 봉작(우
집사), 전작(좌집사)로 되어 있습니다.
참고로 시제 진행에 관련된 용어를 알아보겠습니다.
【* 홀기(笏記) : 혼례나 제례 때 의식의 순서를 적은 글.
* 창홀(唱笏) : 홀기를 낭독함.
* 집례(執禮) : 행사 진행을 맡아 홀기를 낭독하는 사람.
* 알자(謁者) : 헌관과 집사를 행사 위치로 안내 하는 사람.
* 찬인(贊引) : 헌관과 집사에게 절차와 동작을 인도하고 답홀하는 사람.
* 봉향(奉香) : 향합을 받들어 헌관에게 드리는 사람(우집사)
* 봉로(奉爐) : 향로를 받들어 헌관에게 드리는 사람(좌집사)
* 봉작(奉爵) : 술잔을 받들어 헌관에게 드리는 사람(우집사)
* 전작(奠爵) : 헌관으로부터 술잔을 받아 신위 전에 올리는 사람(좌집사)
* 축관(祝官) : 축문을 작성하여 독축하고 불사르는 사람.】
집례의 창홀에 의해 여법하게 시향을 봉행 완료하여 대단원의 막을 내렸는데,
시계를 보니 오후1시였다.
시제 봉행을 약 2시간에 걸쳐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작년에는 묘소 앞에서 음복하고 모여 앉아서 임하군파 정기총회를 하였으나,
올해는 오후에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어 급히 식당으로 이동하였습니다.
광명토성오리장작구이 식당에서 결산서 심의와 신임회장단(회장 전한석, 부회
장 전상환, 전영래, 감사 전성길, 총무 전계표)을 선출하였습니다.

회의가 끝난 후 점심식사를 하면서 종친간의 화목한 교류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식사시간에 어디선가에서 발음하기 어려운 제 이름을 또렷이 부르는 종친이 있
었습니다. 반갑게 인사를 하고 보니 작년 광명시제에서 만난 전인재 종친이었
습니다. 얼굴은 기억이 나는데 이름이 생각이 안 나서 명함을 받아서 이름을
확실하게 기억하였습니다.
대구에서 전정구님이 운영하는 “정선전씨 석릉군파 임하군파” 카페에서 족보
를 다운받아 인쇄하여 가지고 다니는 열성이 대단한 분이었습니다. 종중에 애
정과 열성을 가진 분들이 많아야 더욱 발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전정구님과 더
불어 셋이서 젊은 세대로서 종중발전에 기여할 바를 서로 진지하게 대화를 하였
습니다.
컴퓨터 세대가 앞으로 더욱 많아질 때를 대비하여 기존 “정선전씨 석릉군파 임
하군파 카페”에 있는 족보를 섬세하고 다듬고 널리 종친에게 홍보할 필요성이
있고, 종친회 활동을 인터넷에 체계적으로 기록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는데
서로 공감하였습니다.
종중회의 진행에는 조금 아쉬운 점이 있었습니다.
식당에 음식을 마련한 상황이라 어수선하였습니다. 그리고 방송시설이 미비하
여 이동용 앰프를 이용한 관계로 정확한 내용이 전달되지 않아서 잘 알 수가
없었다.
내년부터는 묘소 앞에서 진행하는 것이 더 좋을 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 그리
고 이동용 앰프를 성능이 좋은 것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오후 2시가 되어서
버스를 타고 강릉으로 출발하게 되어서, 임하군파 회장단이 버스에 올라서 인사
말을 하였습니다.
전구표님은 작별 인사말을 통해서 강릉 고향을 떠나 수도권에서 살고 있으나 언
제나 고향을 잊은 적이 없고, 가고 싶어도 여러 가지 사정상 지금은 갈 수 없
고, 먼 훗날 생이 마감되면 고향에 가고 싶다고 하셔서 일동이 숙연해 지기도
하였습니다.
임하군파 전계표 총무님도 강릉종중에서 늘 버스를 대절해서 많은 분들이 시향
에 참여해 주셔서 고맙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버스를 타고 내려오면서 필구공 종중과 광순공 문중 사이에 화기애애한 대화를
하면서 내려왔습니다.
점심은 광순공 문중에서 부담하였고, 저녁은 우리 필구공 종중에서 부담하게 되
었습니다.
오후 6시경 강릉 마당갈비 식당에 도착하여서 오늘 시향 참여에 대한 종합적인
점검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식사를 하면서 내년에도 강릉에 사는 임하군파 필구공 종중과 광순공 문중이 광
명시 시제를 같이 다니기로 다시 한 번 결의하였습니다.
앞으로 젊은 세대들이 참여할 수 프로그램을 추가하여 더 많은 사람이 광명 시
향에 가서 조상의 은덕을 추모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오후 7시경 식사가 끝나고 집으로 오는데 기어이 비가 내렸다.
우산을 가지고 가서 점심식사 시간이나 버스 안에서 가지고 다니면서 오늘 괜
히 우산을 가져왔었다고 생각했는데, 결국은 우산을 가져온 것이 잘 되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오늘 시향에 참여함으로서 선조님들의 나라사랑 정신을 다시 새겨볼 수 있는
기회가 되어서 더욱 보람 있는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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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과웅 2012-12-01 [211.117.98.228]
삭제
이후 석릉군(石陵君)에 봉해졌다.
다음 내용을 교서에 명시하였다.
(모습을 그려 후세에 전하며, 품계와 관작을 한 자급 초천한다.
그들의 부모와 처자도 한 자급 초천하되, 아들이 없으면 생질과 여서를 가계(加階)하라.
적장은 세습케 하여 녹봉을 잃지 않게 할 것이며, 대대로 영원히 사유를 받게 하라.
이에 반당 4인, 노비 7구, 구사 2명, 전지 60결, 은자 5냥, 내구마 1필을 하사한다.)
반당, 구사에 대하여 궁금하여 찾아보았습니다.
▶ 반당[ 伴倘 ]
조선시대 종친·공신·당상관들에게 그 특권을 보장하고 신변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지급한 호위병.
▶구사[ 丘使 ]
고려시대 이속(吏屬) 중 잡류직.
관노의 성격을 띠고 세습되었으며, 관인(官人)에게 분급되어 호종(扈從)의 업무를 담당하였다. 국상(國相)에는 30인, 3품 이상의 열경(列卿)에는 15인, 정랑(正郎)에는 15인, 원랑(員郎) 이상에는 10인 등 관인들의 관품에 따라 분급된 수에 차등이 있었다.
▷적장(嫡長)
적파(嫡派)에서 낳은 맏아들과 맏손자(-孫子)
▷ 사유(赦宥)
赦 용서할 사 宥 너그러울 유
혹시 후손 중에 죄를 짓는 경우 너그럽게 용서를 해 주고 모범적인 생활을 할 것을 권고하라는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구마[ 內廐馬 ]
내구(內廐)에 속한 말. 임금의 하사품으로도 자주 쓰임.
고려 시대에는 상승국(尙乘局)이나 봉거서(奉車署)에서, 조선 시대에는 내사복시(內司僕寺)에서 담당함.
[참고어] 내구(內廐). 내사복시(內司僕寺). 봉거서(奉車署). 상승국(尙乘局).
---廏 마구간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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