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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 전(全) 자의 필기법에 대해 좀더 고찰해 보면 다음과 같다.
한자는 상형문자(象形文字)로서 거북등에 새긴 갑골(甲骨), 암석 비문 등에 새긴 금석문(金石文) 등에서 전서(篆書) → 예서(隸書) → 초서(草書) → 행서(行書) → 해서(楷書) 등으로 발전되어 왔다.
따라서 제대로 한자의 틀을 잡기 시작한 때는 전서(篆書)부터 라고 볼 수 있다.

전서(篆書)는 주(周) 나라 의왕(宜王) 때 태사(太史) 주(姝)가 갑골, 금석문 등 고체(古體)를 정비하고 필획(筆劃)을 늘려 만든 대전(大篆) 체와 그후 진(秦) 나라 시황제 때 재상 이사(李斯)가 대전(大篆)을 간략하게 하고 그때까지 여러 지방에서 쓰이던 각종 자체(字體)를 정리 통일한 소전(小篆) 체로 나누어 진다.

이후 당나라의 안진경(顔眞卿), 진나라의 왕희지(王羲之)와 왕헌지(王獻之), 원나라의 조맹부(趙孟?) 등이 한자체를 더욱 발전시켜 왔다.

이러한 발전과정을 거슬러 따라가 보면 온전 전(全) 자를 설문고문(說文古文)에서는 그림 1과 같이, 설문전문(說文篆文)에서는 그림 2와 같이, 당의 안진경은 그의 저서 『자서고신(自書告身)』에서 그림 3과 같이, 진의 왕헌지는 그림 4와 같이, 원의 조맹부는 그림5와 같이 쓰고 있다【『서예대자전(書藝大字典)』〔복견충경(伏見沖敬)〕 편저, 교육출판공사 1985년 8월 10일 발행, pp 164~165 참조】

또한 그림 6에서 보듯이 『칠자대자전(七字大字典)』〔등원학래(藤原鶴來) 편저, 도서출판 여송 발행, p128 참조〕에서도 사람 인변에 임금 왕으로 온전 전(全) 자를 쓰고 있다.

그러나 서예대자전이나 칠자대자전 모두 들입 변에서 온전 전(全) 자를 찾도록 분류해 두고 있다.

따라서 결론적으로 이렇게 추론해 볼 수 있다. 온전 전(全) 자는 처음에 사람 인(人)도 들입(入)도 아닌 삿갓 모양(∧)을 임금 왕(王) 자에 쉬워 쓰다가 점차 사람 인변으로 사용하였으나, 214의 부수(部首)를 세워 약 4만 7,000자를 각 부수에 배속시켜 획수순으로 배열하여 오늘날의 한자자전의 체재(體裁)를 정립하였다고 할 수 있는 『강희자전(康熙字典)』(중국 청나라 강희 55년, 1716년에 완성된 전 42권의 한자 자전)에서 들입 변으로 분류되었고, 이에 근거하여 그후 활자를 들입 변 온전(全) 자로 만들므로서 활자에 의한 대량 인쇄물에서 들입 변 온전 전(全) 자가 사람들의 눈에 익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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